2006/02/06

슈퍼보울 보려고 반차 내려던 것 실패

관심 없는 분들이 대다수이겠지만 오늘 우리나라 시간으로 8:00 에 Super Bowl XL 이다. 학교 때부터 하던 운동이라 매년 보아 오다가 취직한 이후로는 못 보고 있었는데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오늘 반차 내고 보려 했었지만 일해야 된다고 반차 거부당했다. 대체 연차는 언제 쓰라고 준 것일까?

나름대로 좋아하는 팀 중 하나인 피츠버그 스틸러스가 오랫만에 올라와서 꼭 보려고 했는데 반차 거부당하니 좀 우울하다.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피츠버그가 시애틀한테 0:3 으로 지고 있었다.

2006/02/03

사용자 인터페이스

얼마전에 샀던 LCD 는 TV 수신 기능이 내장되어 있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고 있다.

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LCD 의 리모콘에 관한 것이다.

처음에는 뭐 이런 어이없는 리모콘이 다 있나 싶었다. 0~9 까지의 숫자, 볼륨조절, 채널 넘김... 보통의 TV 리모콘과 모양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.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뭔지 모르겠는 [-/--] 버튼도 있었는데 이게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.

어이없게도 이 리모콘은 10자리 선택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없었다. 10번은 물론이고, 임의의 10x + y 번을 한 번에 고르는 것이 불가능했다(결국은 그게 가능했는데, 이후의 이야기이다).

17번을 보고 싶다... 그러면 일단 9번을 고른 후 열심히 channel up 버튼을 눌렀다. 그렇게 49번까지 갔다가 별거 없어서 20번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, 그냥 channel down 버튼을 누르기보다 9번을 누르고 다시 channel up... 어떻게 이렇게 개떡같이 만들었을까 싶었다. 이 것을 만든 사람들이 덜떨어진 바보는 아닐 텐데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. 매뉴얼을 뒤져봐도 리모콘 기능 자체는 아예 언급이 없었다. 작년 여름 직전에 샀으니, 한 8개월 정도 이렇게 힘들게 썼다.

그러다가 얼마 전 설 연휴 기간 중 마찬가지로 멍하게 채널 탐색 중이었다. [9] 를 눌렀는데 반응이 없길래, 책상 모서리에 가려서 신호가 도달하지 않았나보다 싶어서 리모콘을 치켜들고 연신 [9]를 눌러 댔다. 그런데 난데없이 99번 채널이 선택되어 있었다...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싶어 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실수로 [-/--] 버튼을 눌렀던 것이 생각이 났다. 다시 그 버튼을 눌러 보았더니 화면에 순서대로 -, --, --- 이 표시되었다... 각각 0~9, 00~99, 000~999 까지 선택 가능하게 모드를 전환해 주는 버튼이었던 것이다.

나름 IT 분야 종사하는 사람이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[-/--] 버튼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리라고 알 수 있었을까... 누군가는 그랬을지도... 하다못해 매뉴얼에라도 나와 있었으면 아, 그렇구나 싶었을 터인데, 처음에는 [-/--] 이 무슨 시간 표시하는 기능인가 싶어서 관심도 없었다.

아무튼 TV 리모콘은 옛날 13번까지밖에 채널이 없던 시절에는 <, > 만으로도 충분했었다. 채널이 많아지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01, 09, 17, 64 등으로 숫자 조합을 해서 쓰는 것이라고 어느 새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 살아 왔다. SkyXxxx 등은 백 자리까지 있어서 세 번 누르는 것으로 기억한다. 의외로 첨단 분야와는 거리가 멀고 게을러서, [-/--] 기호가 의미하는 바를 이미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, 나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익숙하지 않은 인터페이스였다. 그리고 우연히 [-/--] 를 누르게 되지 않았으면 앞으로도 계속 <, > 만으로 채널을 선택하며 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.

매뉴얼에 2~3 줄 정도만 언급해 놓았어도 이렇게 바보짓을 하면서 오히려 그 회사 엔지니어들을 욕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. 실제로 그 문제 때문에 상당히 그 LCD 를 사고싶어 하던 사람 여럿이 리모컨에 대한 저의 혹평을 듣고 안 샀으니, 그 회사로서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하여 한 20대 정도를 더 팔 수 있는 기회를 잃은 셈이다. 매뉴얼에 언급하지 않은 2~3 줄 때문에.